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을 보면서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네. 한국 사람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것을 생전에 볼 수 있다니. 어쩐지 찡하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틀이 지나가건만 감동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무의미하게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갑자기 쑥 눈에 들어오는 뉴스가 있다. 한국의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충격적인 소식에 기사를 클릭해본다.

너무나 부끄러운 얘기지만 한강이 소설의 제목이줄 알고 열심히 기사를 훑었다. 한참을 읽고서야 한강이 작가 이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기사에는 한강의 정체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한강이라는 작가를 모르는 사람은 누구나 한강을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 작품 제목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름이 너무 독특하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무식한 나의 지식에 그만 먹먹해진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걸까? 노벨문학생을 받은 작가의 이름도 모르고 평생을 살았다니 말이다.

오랫동안 갈증이 심한 사람처럼 이리저리 한강이라는 작가를 추적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좋은 대학을 나왔고 아빠도 역시 유명한 작가라는 사실이다. 왜이리 속물일까? 너무나 깊이 속세의 오명에 찌들어 있는 나를 보았다.

사실, 최근 몇 년간은 사람을 멀리하고 살고 있다. 어쩔수 없는 현실에서 이렇게 되었지만, 한편으로 세상을 원만하며 살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간의 실패와 내 자신의 비참함을 그렇게 달래며 살고 있었다. 무기력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하면서 살고 있는 자신이 또 그렇게 무기력을 용서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한강이라는 작가가 갑자기 내 생각 속으로 들어온다. 나는 한강이라는 작가를 처음 보았고 채식주의자라는 작품도 들어본적이 없다. 이 책이 노벨문학상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너무나 제목이 흔하고 식상하다. 그렇게 내 무의식이 알려준다. 채식주의자. 이런 제목으로 노벨문학상을 거머쥘수 있다니.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또하나 눈에 들어온 기사가 있다. 한강 작가는 이번 수상으로 13억 4,000만원의 상금을 받는다고 한다. 기껏 눈에 들어오는 기사는 이렇다.

우리는 모든 것을 결과만 본다. 어디 한강 작가가 상금만을 위해서 글을 썼을까. 그래도 상금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세금도 없다고 하니까 큰 돈이다. 이제 상금 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쓴 책들은 온 세상에 팔려갈텐데.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다 줄까. 이런 생각을 잠깐 하다가 가만히 생각해 본다.

한국에서 노벨상이라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최근들어 더욱 많은 사람이 책을 멀리한다. 유튜브와 SNS에 모두 홀린듯 빨려든다. 활자는 사라지고 영상만이 전부가 된 세상이다.

한강 작가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었을까.

무엇보다도 과연 한강 작가가 본인이 노벨상을 수상할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작가 생활을 했을까? 절대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령 13억의 상금을 바라고 글을 썼다고 한들 확신을 가지고 이 어려운 작가의 세상에서 인내하고 살아왔을까? 절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한강 작가는 아빠도 이름있는 작가였고 타고난 작가적 재능이 있었겠지만 지금과 같은 영상의 시대에 작가로서 길을 정진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저 천재적인 재능이 있어 노벨상을, 그것도 가장 높이 평가해줄 수 있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될 걸이까? 그것도 절대 아닐 것이다.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사람마다 감회가 다를 것이다. 작품 경향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한글이 어렵다고 하지만 영어를 공부한 나로서는 한글만큼 아름답고 쉬운 글이 지구상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얼마나 쉽게 배우고 깨우치는가. 이렇게 과학적인 언어가 어디에 있겠는가.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엄청난 업적을 내가 논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저 티클이라도 내가 배울점이 없을까 되돌아 본다.